8.22(화)10:00 ~
아직은 8월이지만 한여름의 무더위가 약간 지나면서 아침 저녁으로 서늘함이 느껴진다. 올해는 여름장마보다 8월에 비내린 날이 더 많았는데 이날은 약간 덥기는 해도 좋은 날씨였다.

매월 3번째 화요일 오전에 시행하는 전씨웰빙산행. 8월에는 더위를 고려하여 도심속에서도 시원한 호수와 숲이 잘 어우러진 석촌호수길 걷기와 역사문화 답사로 진행했다. 8월초 종득중앙종친회장께서 취임 후 처음 가지는 모임이어서인지 모처럼 많은 인원이 모였다. 23명이나 된다.

잠실역 3출구 지하 분수대 앞에 모여 먼저 삼전도비로 이동하여 역사탐방부터 시작했다. 서울 살면서도 처음 와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병자호란과 삼전도비의 역사를 요약하여 설명했다. 일본 왜구로부터는 1592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그리고 북쪽 오랑캐로부터는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이 발생했다. 3, 40년 사이에 여러차례 침범을 당한 것이다. 수차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조정은 대비를 하지 못했다. 몰라서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세상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어쩌면 알면서도 내부에서 서로간 권력다툼이 우선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無恃其不攻(무시기불공)
恃吾有所不可攻也(시오유소불가공야)
''적이 공격하지 않기를 믿지 말고
적이 공격할 수 없는 까닭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믿어라''
손자병법 8 구변편에서 제시하는 전쟁대비태세의 기본인데 언제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침에 의해서라기 보다 내부적으로 스스로 무너진 뒤에 외침이 이어진다고 했으니 말이다. 삼전도비를 보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전쟁대비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석촌호수 둘레길 한바퀴가 2,650m라고 바닥에  표시되어 있는데 역에서 걸어오고 점심식사 본가설렁탕 식당까지 이동했으니 3km는 더 걸은 것같다.

9월 계획은 3째주말에 대전에서 개최되는 성씨 뿌리공원축제에 버스로 함께 이동해가서 가을 야유회를 겸하기로 했다. 9월22일 금요일 개회식에 단체참석하여 각 성씨 행진 시 의관을 갖추고 격식있게 2035년 전씨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기회가 되게 할 예정이다.

병자호란과 삼전도비의 역사 설명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7년간 전국토가 왜구에 짓밟힌지 30여년만에 이번에는 북쪽 오랑캐의 침입을 받은 정묘호란(1627년)이 일어났다. 형제의 예를 갖추는 것으로 협상하고 물러났는데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와의 친교를 더 중요시했다.

이에 청태종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침범해 왔다. 1636년 12월의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려 했으나 이미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40여일간 항전했으나 10배가 넘는 적군에 포위되어 결국은 왕이 얼어붙은 비탈길을 걸어나와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한강변 모래밭에 청태종을 위한 누대를 높이 쌓고 그 아래 맨 모래바닥에서 인조는 상복을 입고 청태종에게 세번 절하며 이마를 아홉번 모래바닥에 피가 나도록 치욕적 항복의식(3배9고두)을 하면서  기존의 형제의 예에서 군신의 예로 청국을 대하기로 했다.

또한 청태종의 공덕을 새긴 큰 비석을 그 자리에 세우도록 요구하였다. 거북 받침대를 상당히 큰 크기로 만들었는데 더 크게 만들라는 요구에 또 한번의 치욕을 당하며 더 큰 받침돌에 비석을 세웠다. 높이 약 5.7m로 만주 지안에 세워진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약 6.4m)에 버금가는 매우 큰 비석이다.

앞면 왼쪽에는 몽골어로, 오른쪽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만주어, 그리고 뒷면은 한자로 ‘대청황제공덕비(大靑皇帝公德碑)’라는 제목 아래에 청태종의 공덕을 우리 손으로 새겨 넣었다.
그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ㅇ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ㅇ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ㅇ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ㅇ우리 조선은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이 비석은 원래 한강변 삼밭나루터(三田渡)의 항복을 했던 곳에 세워졌는데 청나라와의 관계가 단절되자 누군가에 의하여 강물에 쳐박혀 졌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일본은 이를 다시 세워놓았고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주민들이 땅 속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1963년에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고 그 후 또 여러 과정을 거쳐 본래 비석의 자리에 근접한 현 석촌호수 옆에 세워졌다 한다.

부끄럽지만 치욕의 역사도 후손에게는 교훈이 된다. 깨부수고 숨기고 할 것이 아니라 잘 보존하여 반성하고 각성하여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거울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잠실역3출구 지하 분수대 앞에 모여

삼전도비 앞에서 병자호란과 삼전도비의 역사 설명

녹음이 우거진 석촌호수 그늘길로

가까운 곳에 번영의 상징인 555m 롯데타워가 우뚝 서있다. 123층으로 세계에서 5위의 높이라고 한다. 전망대 왕복 엘리베이터 비용이 27,000원이라는데 그래도 다녀온 사람은 만족해 한다.

점심은 가까운 본가설렁탕에서

종득종친회장 환영인사

정선파 태우회장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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