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금) 오후, 저녁

1971년에 소위로 임관하여 한부대에서 근무한 소대장 4명이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나만 남고 ROTC 9기 3명은 2년 근무 후 전역하여 각기 다른 분야에서 조국근대화의 역군으로 살았다. 리비아 건설공사 현장에 수년간 근무한 친구, 섬유분야 전문가로 세계화를 이끈 친구, 전자분야에서 CEO까지 오른 친구.

24개월 짧은 기간동안 같은 시대 같은 부대에 함께했던 인연이다. 어쩌다 궁금하여 서로 근무지를 방문하기도 했고 내가 근무하는 군부대로 초청도 했다. 가족동반으로 부대 관사에서 잠자고 전방구경도 했던 여러 추억이 쌓였다.

나중에 임원이 되고 여유가 생길때 쯤 가끔 골프모임도 가졌는데 어느때 한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한두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여 충격을 받았다. 본인 일이니 주변 친구들에게 제대로 연락도 못했던 것같다. 귀한 전우 한명을 잃어 허전하기 이를데 없지만 남은자라도 당시 대대장 모시고 가끔 모였다. 그러다가 그 대대장께서도 연로하여 떠나셨다.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다 떠난다. 이제는 이별이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들을 한다.

겨울 모임은 걷기코스를 정해서라도 빠지지 않고 월마다 모인다. 연말엔 송년모임으로 옛 고교시절 추억을 회상하며 남산길을 걷고 충무로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세대 어린시절의 가난과 생활고에 비해 지금의 풍요로운 생활수준에 공감하는 세대다. 당시의 가난은 도시 농촌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했지만 특히 산골마을 시골의 처지는 더 심했다. 초등, 중학시절엔 1년에 쌀밥을 먹을 기회가 대여섯번 정도 되었나 싶을 정도였다. 수확한 벼를 대부분 추곡수매로 팔아야 자녀들 학교 공납금내고 살림살이 비용으로 쓸 돈이 되었다. 농산물을 뭐든지 팔아야 돈이 생겼으니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다.

명절과 제사날 정도 쌀밥 먹어볼 기회가 있었고 그 외에는 보리밥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논밭이 비슷할텐데 왜 그랬을까 싶지만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그랬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스레트로 바뀌면서 볏짚이 여유가 생겼고 구공탄을 쓰면서 산에서 나무를 잘라오지 않게 되니 산림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좁은 마을길을 넓히니 리어카로 곡물이나 거름을 나르기 쉬워졌다. '통일벼' 품종개량으로 쌀의 수확이 대폭 늘어났다. 식량문제가 거의 해소되었다.

현 시국에 대한 거론에서는 개인별 다소 관점을 달리했다. 나라사랑 마음은 공통이지만 대처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의 강점이면서 또 취약점이기도 한 것같다. 빈부격차의 해소문제에 관심을 두는 친구도 있고 종합적 국가발전을 보는 안목의 친구도 있다.

섬유분야 근무할때 세계시장에서 경쟁국을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경험을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당시 우리나라 실뽑는 기술은 '습식'으로 남자용 옷의 원단으로는 적합했으나 여성용 옷감으로는 가볍고 포근함에서 대만제품을 따를 수가 없었단다. 당시 대만은 '건식' 실뽑는 기술이 있어 우리가 그들을 이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눈물겨운 스토리다. 각 분야별로 그같이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쳐 지금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발전시켜온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시절에 소위 '민주화' 구호를 외치며 사사건건 국가정책에 딴지를 걸고 데모를 일삼던 운동권 대학생들 그룹이 지금 '점령군'처럼 행세하면서 나라를 점령하여 국가발전의 주역들을 마치 죄인이나 파렴치범 처럼 몰아세우며 세계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을 비롯한 각종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내면서 돈을 벌어보지 못한 이들이 돈을 물쓰듯 하는걸 보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노라고 울분을 토한다.

미국의 어느 투자전문가가 세계각지를 다니며 투자분위기를 물색하는 중에 노량진 '공시촌'을 돌아보면서 큰 실망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취업준비생 65만명 중에 40%인 26만명이 공무원준비생이라 한다. 어찌하여 머리좋은 젊은이들이 도전적인 자세로 새로운 일을 개척하려 하지 않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느냐는 것이다. 젊은세대가 나라의 미래인데 진취적이지 않은 분위기에 실망하고 베트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나라걱정과 후손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지금시대 어른세대의 공통적 관심사항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우리세대에서의 노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켜온 자부심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우리 대한민국보다 훨씬 나은 여건에서 지도자와 체제를 잘못 만나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후진성을 면치 못한 북한,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에게 나라가 휘둘리고 있다는데 자존심이 상한다. 자유대한민국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이 남다른 우리세대이다.

예전, 서울역에 내리면 건너편 남대문쪽 빌딩 옥상에 '아이디얼, 드레스미싱' 네온싸인이 울긋불긋 빙빙돌아가던 그 위치의 지금 풍경이다.

'서울로 7017'
2017.5월에 개장된 도시재생모델이다. 노후 고가도로를 보행도로로 재탄생. 콩크리트화분 645개에 꽃과 나무 24,085그루 식재.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복원되어 있다.

안중근의사 동상에서 참배 후 남산 서울타워를 배경으로

목멱산방 비빔밥 먹으러 언젠가 와봐야겠다

한옥마을로 들어서며

충무로역 부근의 맛집 쌈사랑의 연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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