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들이 지하철타고 다니는게 많이 보인다. 무척 많다.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손수레를 밀어가며 힘겹게 공원을 산책하고 왕래하는 할머니도 많다. 그나마 그 정도 걸을 수 있어도 대견하다. 거동을 못하고 아들을 겨우 알아보는 그런 어머니도 우리 친구들 중에 있다. 그래도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다 우리 어머니들의 여러 모습들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면 대체로 생생한 노인네가 아니다. 내가 할바를 다해드리지 못해 언제나 서러움이 있는 그런 어머니이다.

누님 80회 생신에 형제간 5남매와 자녀 4남매 중에 싱가폴에 살고 있는 세째아들네만 빠지고 다 모였다. 막내아들이 글을 써와서 읽었다.

'우리 어머니'
우리를 낳고 키워주신 어머니
평생 고생으로 살아온 우리 어머니
언제나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신 어머니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않고 미소로 우리를 챙겨주신 어머니...

겨우 몇줄 읽다가 목이 메어 더 읽지 못하고 고등학생 아들이 읽게 한다. 그 아들도 눈물을 짜면서 읽어내려 간다. 어디 그들의 어머니 뿐이겠는가? 잘나고 똑똑한 어머니가 아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세상의 그 많은 여러 어머니들 중에서 가장 애틋한 어머니가 내 어머니이니까 말이다.

그런 여러 어머니의 고생과 말없는 희생 덕분에 우리가 있다. 어느 누구나 다 어떤 어머니의 자식이다. 자식이 올바르게 자라나고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누구 할것없이 더없이 순수하다.

1963년 봄에 25세 새신부 누님은 딸하나를 안고 직업도 정해지지 않은 30세의 남편을 따라 서울로 올라오셨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피난민처럼 자리잡은 곳이 지금의 성동고등학교 동편 담장바깥 산비탈 '유락동'이라는 달동네였다. 땅바닥을 이리저리 평평하게 고르고 나무판자로 지은 무허가 집들이었다. 집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겨우 지개하나 다닐만큼 꼬불꼬불 있었다. 방바닥은 드람통철판을 자르고 두들겨 펴서 온돌을 놓았다. 입구가 부엌이고 구공탄 아궁이였다. 그런집 작은방에 '사글세'를 살았다. 1.5m 폭에 길이가 2.5m 정도되는 쬐끄만 방이었다. 동네에 공동수도가 있어 1원에 물지개로 2통을 사와서 부엌의 독에 붓고 그 물로 밥하고 세수하고 빨래하고 살았다.

1964년초에 고등학교를 합천 시골에서 서울로 간다고 하니 당연히 다들 말렸다. 집도 없고 형편도 안되니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내게 '필'이 꽂힌 서울에서 오신 누님의 한마디.
'투표하러 어느 고등학교에 갔는데 2층복도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더라.'
'야 바로 그 학교야.
나는 그 학교로 가야 돼.'

그 이후 자다가 '경끼'를 자주했다. 밤에 엄마가 바가지에 물을 받아 식칼을 담궜다가 골목쪽 마당으로 던지며 '썩 물러가라'고 외치신 것같다.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저러다가 아들이 잘못되면 어떡하겠느냐고. 결국 아버지가 결심하셨다. 그래도 서울에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니 먹을 것만 챙겨 보내면 되지 않겠나 하셨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후기'라는 입학원서가 뭔지도 모르고 받아서 입학을 했는데 거기가 성동고였다. 여러 학교 중에 선택을 하여 원서를 낸다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사치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그 판잣집 작은 방에서 네명이 함께 살았다. 3식구는 머리를 위쪽으로 두고 나는 입구쪽에 머리를 두고 잤다. 주인집도 그리 살았고 그 동네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았으니 특이할게 없었다. 어쩌다 친구따라 동대문쪽 도서관 가는 길에 서울운동장 부근의 친구집에 간적이 있다. 소리가 삐꺽 나는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삥둘러 네모난 기와집이고 툇마루가 있었다. 그 어머니가 내어오는 간식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다. 한동안 세월이 흘러 그 친구 아들 결혼식 주례를 내가 섰고 그 어머니는 내 사는 모습이 궁금하시어 1군사령부 나의 장군사무실을 찾아오신 적도 있다.

17살 아래인 막내 여동생에게는 엄마같은 언니이고 우리 동생들이 서울로 진출하여 터전을 잡게 해주신 바탕을 마련하신 자형누님이시다. 평생 다 갚지 못할 은혜이다. 오래 건강하시기를...

자녀들이 생신 추진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유인물을 준비했다.

사촌, 고종, 이종, 외사촌의 가장 맏이인 큰아들이 사회로 진행

자형이 '갈대의순정' 즉석 한곡조

생신축하노래

축하글 낭독 및 선물전달

'삼각형부엌, 드람통철판 온돌방, 얼어붙은 화장실' 등 자녀들이 회고하는 어릴 적의 어려웠던 생활상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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