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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적의 고교친구 큰딸 가족이 수십년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사위는 목사님이고 아들이 둘이다. 큰아들은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대 의대에 전세계 50명 뽑히는 어려운 명문대에 합격했고 둘째는 중2 학생이다. DMZ를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기특하다.

곧바로 1사단을 통해 3, 4일 앞두고 긴급히 주선했다. 아무리 바쁜 일들이 있어도 이보다 중요할까 싶어 하루 시간을 내고 승용차로 운전까지 하여 안내했다.

6.25 전쟁의 경과 요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준비했다. DMZ 전망대에서 전방지역을 내려다 보면서 군사분계선과 2km 남쪽과 북쪽에 설치된 철책선 등에 대하여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그 학생들과 부모들이 아마 난생 처음 보고 듣는 내용인 것같다. 이틀 전에 트럼프대통령이 DMZ를 방문하여 건너다 본 그 DMZ현장에서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미국국민으로 사는 그들이 한민족의 후예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까 하는게 항상 관심사였고 그에 도움을 줄 자료를 CD에 영상으로 편집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기도 해왔다. 국적은 미국인이고 거기서 태어나 거기서 자라고 학교를 다니면서 형식은 미국인이지만 외모는 전혀 서양인이 아니다. 또 유태인처럼 고국에 대한 애정과 애국심이 유지되려면 그들이 다른 외모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의 맥을 이은 위대한 조상을 둔 후예라는 정체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사는 한국인 2세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7.2(화) 오전에 통일대교~ JSA대대 안보전시관, UN寺~ 도라전망대~ 제3땅굴~ 임진강변 화석정

작년도에 준공된 UN사에는 6.25 참전국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참배 및 타종

안보전시관에서

휴전협정문 서명자:
1953년 7월27일 오전10시 제159차 본회의에서 해리슨 유엔군수석대표와 남일 공산군측 대표가 협정서에 서명하고 북한 김일성, 중국 팽덕회. 클라크유엔사령관이 각각의 후방사령부에서 서명했다.

대한민국은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해야 한다는 이승만대통령의 의지로 휴전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한미동맹 체결과 주한미군 주둔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경 판문점공동경비구역 내 사천교(돌아오지 않는 다리)근방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 및 흉기로 구타, 살해한 사건. 미군2명 사망, 한미군 9명 부상.
이후 8월 21일에 미2사단과 1공수여단이 투입되어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완료했다.

당시 JSA대대의 한국군경비중대장이 육사 1년 선배인 26기 김문환대위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구조 및 후송조치를 했다. 

안보전시관 앞에서

도라산전망대가 작년가을에 인접고지 정상으로 이전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6.25한국전쟁의 경과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4장의 요도로 설명하고 유인물로 인쇄하여 전달했다.

북한은 남침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1개월여만에 낙동강까지 진출했다. 8월15일에 남한 점령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계속 북진했다.

압록강 두만강까지 도달할 싯점에 20만의 중공군이 북한으로 몰래 진입하여 공격중이던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미군 6천여명이 전사/실종되었고 5천여명이 부상당했다.

1951년에 시작된 휴전회담이 2년여를 끌면서 휴전선 일대에서의 고지쟁탈전으로 피아 수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전체 경과를 한장으로 요약

고교 친구

전망대 뒷편 놀이터에서의 3父子

제3땅굴을 방문했다. 안내병사가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 준다.

헬멧을 쓰고 걸어서 땅굴 끝까지 왕복

점심식사 후에 부근의 화석정을 돌아보고 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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