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일) 11시, 충정사에서
예불연 월례법회를 겸한 충정사법회에서 명상지도자과정 스님 및 불자들을 포함하여 충정사 2층 법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에게 총무원장 진우스님께서 특별법문을 해 주셨다.
충정사는 예전의 수도경비사령부 법당으로서 수방사가 남태령지역으로 부대이전 후 서울시로 전환된 부지에 위치하여 시설이 서울시로 기부채납된 상태라 매년 사용수익허가를 연장해가면서 20여년 이상을 고가의 사용료를 납부하고 사용해 왔다. 앞으로도 호국불교의 중심도량이면서 종단의 도심포교 핵심포교당으로 역할이 되어 나가도록 종단에서 적극적 조치를 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총무원장스님의 방문을 계기로 하여 충정사 외부 입구도로가 꽃길로 가꾸어지고 텃밭에도 채전이 조성되는 등 말끔한 정리가 되었고 내부 입구의 관음전에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4점이 걸려져 색다른 분위기의 장엄이 되는 등 여러 면에서 정리가 이루어 졌다.
총무원장스님의 귀한 법문에 2층법당이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찼고 합창단까지 동참하여 법회의 품격이 한껏 높아졌다. 전법을 강조하시는 총무원장스님께서 지금 시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젊은이들의 심리적 어려움 해소에도 불교의 명상기법이 많이 활용되어 전법의 기회로 삼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셨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법문요지>
수개월 전에 와본 충정사가 그 사이에 많이 정리되고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총무원장으로 부임이후 두가지 역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경주 열암곡부처님 바로세우기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직장, 결혼, 경제적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태에서 부처님 정법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제이다.
근세에 서구물질문명과 기독교문명이 유입되어 살아온 결과가 현재의 상태이다.
佛法의 명상기법을 통해서 이런 문제도 해소하고 전법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사상은 '이고득락' 즉,고통을 여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극락이라 함은 상대적 의미에서의 극락이 아닌 절대적 극락을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고통을 여의는가?
(= 해탈 = 미르바나 = 성불)
깨달음이란 뭘 알았다는게 아니라 이고득락한 사람을 말한다.
그 반대를 중생이라 할 것이다.
중생도
기분좋은 중생: 삼선도가 있고
기분나쁜 중생: 삼악도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다 '일체유심조'이기는 하다.
이런 것의 첫 시작점은?
다 12연기의 '無明'이다.
무명은 유의에서 온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난다. 분별하는데서 부터 모든 고통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情이 있는 부류를 중생이라 하고,
情이 없는 부류가 무정물인데,
중생이 情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면 무정이 된다.
중생이나 부처까지도 떠나야 한다.
情에 머물지 않고 떠나야 한다.
일시적으로 감정이 사라진 상태로는 감정을 떠났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감정으로 살아간다.
배고프면 기분좋고
맛있으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면 즐겁고...
사람들마다 행복을 느끼는 곳이 다르다.
어떤 이는 사랑, 건강에서,
또 어떤 이는 노름, 마약에서...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으면...
모두가 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국가를 위해서?
그런 분도 계시지만 그것도 그렇게 하는게 내가 행복하니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내가 기분 나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남을 위해? 부모님, 자식을 위해? 그런 것도 결국은 자기 기분이 좋고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내몸이 다 감정덩어리이고 분별덩어리이다.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감정은 두가지가 언제나 함께 온다.
기분좋은 감정, 기분 나쁜 감정이 항상 함께 온다.
몸이 사라져도 감정덩어리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괴로운 감정, 즐거운 감정,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정 등.
즐거운 감정과 괴로운 감정의 두가지 業은 질량이 똑같다. 미래에 과학이 발달하여 감정의 질량을 측정해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똑같다. 그래서 언제나 평형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아무리 최첨단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괴로움'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괴로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내 감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기분좋은 감정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 - 질량이 똑같기 때문이다.
마치 이런 것과 같다.
해가 뜨면 지게 되어 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이 온다.
태어나면 죽는다.
젊으면 늙는다.
건강하면 병도 온다.
행복하면 불행도 있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도 있다.
그런줄을 누구나 모르지는 않는다.
나는 혹시 거기서 벗어나지 않을까 요행을 바라지만 그럴 수는 없는게 이치이다.
불교는 고통을 벗어나는데에 목적이 있다.
즉, 苦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불자들은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즐거울까, 더 건강하고 행복할까, 그것만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올라가면 내려올 수밖에 없다.
業이 평등하다고 하셨다.
'삼세양중인과 평등'이라고 큰 틀에서 합해 보면 다 평등하다고 하겠다.
시절인연이다.
어릴적에는 비교적 기분좋은 시절이 많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늙은 때는 기분 안좋은 시절이다. 시절인연이 그런 것이다.
이유없이 기분 안좋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면 시간, 공간 어디에 있어도 기분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靜座處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차를 반쯤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이고,
그저 꽃은 피며 시냇물은 흐르네.
-소동파가 추사에게-
세상사가 결국은 '감정놀음'이다.
부처는 業이 zero이므로 그 어떤 것을 더해도 빼도 業이 생기지 않는다. 아뇩다라삼악삼보리 상태이다.
마음에 감정이 생기는게 문제인 것이다.
감정이 어디서 오는가?
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못된 마음인 말라식, (제7식)
그리고 감정저장소인 제8 아뢰야식 (業)
줄탁동시처럼 즐거운 마음이 일어날때는 기분이 좋아진다.
삼라만상은 서로 다 연결되어 있어(인드라망이라 한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결과이고가 없다. 지진, 천둥 번개, 쓰나미가 잘못이 있나? 피해를 입었다고 어디에 고발할건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런 자연재해로 희생된 분들도 다 그분들의 업상이 아닐까 싶다. 業의 작용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가까운 인연에만 안타까워하고 가깝지 않다고 소홀히 할 것인가? 내편 네편이 어디 있겠나? 통째로 하나인 세상이 아닌가?
관세음보살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민감하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소리를 듣는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친근하다.
관세음보살은 業이 없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다.
그 행위를 따르는 것이 6바라밀이요 바라밀행이다.
보시를 통해 감정을 일으킨다면 또 업보를 짓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한다. 相을 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분별감정을 일으키지 않는게 禪
수행을 통해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해야 인과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에 즐거움을 즐긴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業이 두터운 사람은 즐거움, 괴로움의 폭이 크고, 행복, 불행의 폭이 크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그를 찾아갔다.
디오게네스는 길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 "바라는 것 한 가지를 말하시오."
▷디오게네스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
과거,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말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인연연기에 따라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형제자매로 맺어져 있다. 시시비비할게 없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해도 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내 몫이다.
각자의 業이다. 상대방을 탓할 것도 없다. 그는 그의 業이다.
남편이 어떻다? 부인, 자식이 어떻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반응하는 나의 業이다.
그런데 깨달으면 내가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 있든 상관없다. 業이없기 때문에 기분나쁘지 않고 괴로움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성주괴공을 거듭하더라도 반응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간화선도 어렵지 않다.
화두 하나를 들고 생각 감정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그게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경절문)이다.
어떤걸 대하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라.
일단은 마음이 고요해지는게 기본이다.
그러면 좋은 감정도 나쁜감정도, 감정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명상의 기본이다. 왠만한 일에 초연해진다. 다 연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고 연기일 뿐임을 알게 된다.
문제는 너야! 너의 감정이야!
이를 잘 관리하면 '이고득락' 할 수 있다.
관음실에 새로 모셔진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충정사 내부 입구에서 다과 봉사
2층 법당
정근축원
입구 신발 정리
청법가
입정
총무원장 진우스님 법문
합창단 축가
기념촬영
점심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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