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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4(월) 점심때 마포의 친구 사무실을 방문하여 문집 5권 1질을 받음. 문집을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는 그 귀한 책을 어찌 그렇게 취급할 수 있나 싶어 직접 가겠다고 해서 약속을 잡고 중학 태수친구와 함께 가자고 하여 방문했다.
친구 사무실 방문, 점심
지금 되돌아 보니 우리가 1955년 초등학교에 입학할때 수덕친구는 그집 5째였는데 그의 부친은 42세 젊은 청년이었다.
우리 동네의 맞은편 산골 샘실에서 개비리 고개를 넘어 우리들은 6년동안 학교로 오고갔고 또 중학교 3년도 같이 다녔다. 그때는 애들이 많아서 우리 동네에서만 열댓명이 초등학교 같은 학년이었는데 중학교에 간 친구는 5명밖에 안된다. 논밭이 많지 않은 동네라서 언제나 식량이 모자랐고 식구많은 집은 살림이 더 어려웠을 터인데 그 친구네는 10여명의 식구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는 일찍이 판사도 나오고 갑부나 인재배출이 많은 동네로 이름이 나 있었고 그 친구네는 읍내에 '태을당'이라는 작은 점포도 운영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과 경지에 깜짝 놀라다
책을 받아 서문과 내용을 대략 읽어보고 공부를 조금 했다는 나로서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경지를 느끼면서 깜짝 놀랐다. 남겨진 유고가 詩 600수, 산문 200여점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한자 자필 기록으로 보존되어 왔고 道學, 佛敎 등 어려운 경지의 글들까지 지금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로 번역하여 책으로 발간한 일들이 국가적 역사보존 사업으로도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당시에 농사짓는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일이 생활의 기본이었던 시절에도 동네에는 서당이 있었다. 고등학교 방학기간에 동생과 함께 저녁시간에 서당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하기는 했어도 체계적이 아닌 단편적이었다. 학문을 제대로 수학한 분들이 시를 짓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600여 詩 중에 한편을 소개해 본다.
황강에 유명한 함벽루 정자가 있어 요즈음도 고향 방문때마다 가보는 곳이다. 대학원을 다닌 우리도 그분의 경지같은 詩가 나오지 않는데 그분은 이렇게 읊으셨다.
登涵碧樓
勝地南汀涉復登
雲歸絕壁石千層
青山惟帶長江立
墨客多從畫閣憑
玉聲高飛初上月
鍾聲遙落已傳燈
繁華不屬吾人事
好把新詩孰可能
<함벽루에 올라>
남정강변의 명승지를 걸어 오르니
구름 돌아가는 절벽이 천층을 이룬다
청산은 긴 강을 둘러싸고 섰는데 묵객들이 모여서 그림 같은 누각을 노래한다
옥 술잔에 초승달 높이 떠오르고 범종소리 멀리 사라지며 진리의 등불 밝힌다
번잡하고 화려함은 우리의 일 아니니
즐겁게 새로운 시를 누가 와 쓸 수 있으랴
色을 통해 空의 이치 표현
함벽루 정자의 아름다운 절경에서 황강과 초승달 뜬 저녁놀을 바라보는 광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 그분은 色을 통해 空을 본 이치를 짧은 시에 표현하신 것같다. 시나 산문이나 다 그런 안목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글들로 보인다.
이런 노력으로 역사문화는 보전
오래전의 역사가 아닌 바로 우리 부친세대의 글인데 그 명맥이 우리세대부터 거의 단절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 부친의 글을 해독하느라 36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그나마 앞으로는 또 누가 이런 역할을 할까나?
친구 선고의 문집출간에 애쓰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

위 題字는 수희형이 정성들여 쓰셨고 표지 바탕은 부친 牧翁의 친필 유고의 일부이다.
어릴적에 뵈었던 어른이 이분이었네.

서문에 있는 아래 글이 전반적인 글의 경지를 대변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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