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일) 10:30 국방부 원광사

지난주 일본 후쿠오카 정행사 4박5일 수행동참 다녀왔다.
일본인들은 퇴직후 사찰 가까이 아파트에 생활하면서 사찰 일정에 동참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신앙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매일 06:30 아침예불에 동참한다. 대다수 일본인은 생활자체가 불교라 하겠다.
법회 후에는 개인별로 돌아가며 솔직하게 소감을 발표한다.

불교수행의 4가지
信解行證 중에 일본인은 '信, 行'을 중시하는 것같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解 證'에 치중하는 경향이다.

일본 정행사에서는
'나만다' 염불(나무아미타불) 위주로 하고 있었다.

당나라때 성도대사는 '聖道의 자리와 
淨土의 자리'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셨다.

聖道의 자리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잘못하면 삼악도에 떨어진다.(難行門)
이에 비해 淨土의 자리는 易行門이며 빠르다.

아미타불의 본원에 올라타기만 하면 차안에서 대안으로 가게 된다.
(자력보다 타력신앙 성격)
원효대사도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게 했다.
기독교도 사도행전에 '주여,주여' 반복하게 한다.

우리가 누구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오듯이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면 오신다.
명호를 부르는 것은 누구를 오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나무(南無)'는 귀의합니다 라는 의미로서 곧 아미타불과 '일체'가 된다.

가정에서도
남편은 '서방'이라 하는데 이는 '서방정토'라 볼 수 있다. 남편을 서방정토 아미타불처럼 모시고 또 남편은 아내를 깨달은 분, '각시'로 보며 자녀는 '동자'(문수동자)로 보면 가정이 바로 불국정토가 되지 않겠는가?

'시간'이란건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게 없으니 바로 '무량수 무량광'이 된다.
행복할수록 시간이 안 느껴진다.
죽음이란 것도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임종시에 본인이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10번 부르면 좋다고 했는데 이게 쉽지 않다. 만해 한용운스님이 만주에서 총을 맞고 통증이 심해지니 평소에 입에 달고 살던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안 나오더라 하신바 있다.

'나무아미타불'이 평소에 간절하게 저절로 입에서 나오게 하는게 아미타불과 일체가 되는 길이 된다. 임종시에 본인이 염불하기 쉽지 않으니 옆에서 스님이 염불해 드리는 것이다.

죽음이 있는가? '본체'의 안목에서 보면 불생불멸이다. 육신을 나로 삼으니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체의 자리로 나의 안목을 바꾸면 육신의 죽음은 두렵지 않다. 본체는 원래 생사가 없으니 이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일본 정행사 아침 예불시에 대중이 운율에 맞추어 함께 힘차게 '나만다' 염송을 하고 나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스트레스까지도 해소된다. 그에 비해 우리 염불 범패음 곡조는 한이 서린 듯한 느낌이 든다.

사찰의 주련에 이런 문구가 많이 걸려 있다.
'阿彌陀佛在何方'
看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감사하는 생각과 말과 표현을 습관화 하자.
일본에서는 버스운전수도 승객이 내릴때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인사를 공손히 한다.
몸에 배인 친절, 감사, 미소에 교통법규도 잘 지킨다.
우리는 대체로 무뚝뚝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소와 감사표현이 인색한 편이다.

행복의 세계로 하나가 되자는 의미가 '나무아미타불'이다.

법회때마다 염송하는 '반야심경'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고 단지 입으로만이 아닌 생활에서 마음가짐과 언행으로 실천하자.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듯이 염불을 입에서 놓지 마라. 부처님께 계속 귀의하고 일체가 되는 삶이 된다.

수행은 '닦는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임을 명심하자. (부처님 안목으로 바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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