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일) 10:30 원광사 일요법회 법문
●주제: '행복의 결정권은 내안에 있다'

2차세계대전 때 나치의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빅터 프랭클'의 감동적인 체험사례이다.

수감자들은 누가 언제 독가스실로 먼저 들어가게 될지 아무도 예측못하는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풀려나게 될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가운데 죽을 차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빅터 프랭클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내 몸은 비록 수감되어 있지만 내 마음은 지금 자유롭지 않은가?''
내 마음의 자유 하나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몸은 비록 수용소에 갇혀 고통스럽더라도 마음은 자기 것이니 누가 붙들어 매거나 가둘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상황'은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얽매어 버린 것이지 누가 얽어맨 적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환상'일 뿐인 것이다. 마음은 본래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구속된 적이 없고 또 구속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게 마음이다.

'행복' 또한 추구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 할 것이다. 어떤 수준을 가져야 행복해지는 그런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 행복해지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고 하겠다. 행복은 지금 누리는 것이다. 그 누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지금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행복을 끌어당기는 작용이 이어진다. 현재 나타나 있는 상황에 따라 내가 행복해지는게 아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상황은 내가 행복해지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fact, 곧 진실이다.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행복 너머 至高의 평화,
無爲自然, 지금 있는 그대로가 완전한 조화를 이룬 상태이다.

'상황' 자체는 중립적인데
내가 해석하는 대로 미래는 만들어진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열반'이 창조된다.
(긍정적으로 보면 '극락'이요
부정적으로 보면 '지옥'이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세계에서 매일 35,000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느 기자가 가난한 나라 소말리아  취재 중의 사례이다.
죽은 듯한 동생을 안고 있는 형에게 사과 반쪽을 주었더니 자기가 먹지 않고 씹어서 동생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며칠 후 그 지역을 지나면서 그 아이를 찾아보았더니 동생은 살아있었고 형은 죽었다고 했다. 같은 하늘아래 이렇게 사는 이들도 있다.

돈이 많은 가정에서 보다 재산이 없는 가정에서 더 화목하고 형제간 우애가 깊으며 부모봉양 더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우리의 근원적 성품에는 자비와 사랑이 있다. 많이 가진 경우에 다툼이 많이 일어나는 일이 많다.

어떤 사람이 복권15억원 당첨되었는데 오히려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30억 당첨되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았다는 것이다.
땅값이 100배 뛰어 120억 토지 보상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자식들이 재산 120억 두고 서로 싸우는걸 보고 자살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가난했던 시절로 마음이 돌아가니 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고백도 있었다.

특정한 규모의 재산으로 행복, 불행이 결정되는게 아니라 다 내 마음이 결정한다.

세상에는 어려움 겪는 사람이 무척 많다. 예전의 군생활 여건에 비하면 지금의 환경여건은 극락이라 할 정도이지만 지금의 장병들은 또다른 욕구를 토로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지금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극락일 수 있음을 생각하자.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
절망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인츠 구데리안 -

사람들은 '괴로움'이라는 환상에 빠져 산다. 지금 여기서 얼마나 감동하고 누리며 사느냐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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