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우골프회 2018년 첫 동계체력단련이 낮 최고기온 0도로 추운 1월 4일 오후에 태릉GC에서 2팀이 참가하여 진행되었다. 

50년전 육사생도시절 이 지역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살을 애는 듯한 추위였다고 기억된다. 맨몸으로 얼어붙은 잔디위로 포복을 하기도 했고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는 수련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골프장 연못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

1월4일은 6.25때 1.4후퇴가 있었던 역사적인 날이다.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겠지 싶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것같다. 특히 젊은 세대는 더하다. 우리가 경험한 현실적 실제 역사까지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또 그런 공부가 개인의 취업이나 업무수행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일부러 관심을 가질 일도 없다.  

1.4 후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전 전선에서 기습적 남침을 감행했고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다. 적군은 한달여만에 낙동강까지 진격하여 우리 고향 동네에 까지 북괴군이 와서 할머니만 홀로 집을 지키고 우리는 옆의 산동네로 피난을 갔다. 불과 한달 남짓 되는 점령 기간 동안에 민사부대가 와서 공산화 체제를 갖추고 교육과 집회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던 9월 15일 이후에 북괴군은 후퇴를 하기 시작하여 9월28일에는 3개월만에 서울을 수복했다. 유엔군은 북한으로 진격을 계속하여 평양을 점령했고 국군 6사단 7연대는 압록강 초산까지 진출하여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대통령께도 보내드렸다. 이제 통일을 눈앞에 둔 싯점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중공군 20여만명이 이미 북한지역에 잠입하여 아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퇴로를 차단함에 따라 추운 겨울에 흥남철수작전으로 미군 전함에 피난민을 실어 남한으로 왔다. 이때 문재인대통령 부친도 그 배를 타고 거제도로 이동해왔다는 설이 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후퇴를 거듭하여 급기야 1951년 1월4일에는 서울을 적의 수중에 내주게 되었다. 1.4 후퇴이다. 
  
그로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될때까지 2년반 동안 밀고 밀리는 치열한 지역쟁탈전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1952년 10월, 철원평야의 요충지인 395m높이의 작은 백마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열흘사이에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로 아군 9사단 3,500여명, 중공군 1만여명의 사상자 및 포로가 발생했고 결국 백마고지는 아군이 점령하게 되었다. 그런 수많은 희생으로 지금의 휴전선이 지켜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며 추운 날이지만 혹한기 체력단련을 강행했다.

그린과 페어웨이 땅은 꽁꽁 얼어 있고 그늘에는 잔설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화랑코스 2번홀 그린 근처 페어웨이 비탈 잔디얼음판에 미끄러져 오른쪽대퇴부가 어름판에 부딪치며 손을 짚어 오른 손바닥에 피가 조금 났다. 마침 씨놀 마이티크림을 가지고 있어 바르고 즉각 조치했다. 추운 기온에 비해 바람이 없어 전혀 춥지는 않았다. 이런 추운날 마누라가 돈벌어 오라고 나가라 했다면 서러웠을텐데 스스로 돈쓰면서 나온 일이니 추워도 불만이 없다고 농담을 한다. 상쾌한 공기 마시며 잔디위를 10,000보 이상 걷게 되고 눈위에서는 감기바이러스까지 죽는다 하니 감기 예방과 치유효과도 있을 듯싶다.

합우골프회 멤버 한분한분이 다 애국, 구국활동에 앞장서는 분들이라 이에 관한 정보교류와 새해의 역할을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스케이트를 탔던 그 저수지이다

멀리 북한산 정상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가까운 불암산 정상 풍경이 일품이다

63년 전부터 친구인 초등학교 어깨동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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