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토) 오후 청계천, 세종로광장에서
연일 한파경보가 발령되고 평창은 영하 19.8도가 된단다. 잔치에 날씨가 큰 부조인데 동계올림픽 개회식날 저녁에 찬바람까지 불면 예전 '황태덕장'이었던 그 곳에서의 추위가 걱정이란다.
이즈음의 추위에 관한 여러 속담들이 있다.
'大寒이 小寒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小寒에 얼어죽은 사람은 있어도 大寒에 얼어죽은 사람은 없다'
'立春추위에 장독 깨진다' 등의 속담이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났다고 마음 놓았다가 크게 당하니 조심하라는 말일게다.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이 절기로 입춘이 되니 아무래도 소한, 대한 추위보다야 덜하겠다 기대했던 2월3일 토요일 오후가 그랬다. 주말의 야위집회시마다 하도 추워 올겨울 혹독한 추위에 대해 지난주에 글을 써 올렸는데 지난 주말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싶게 더 춥다. 방한대책을 안해서가 아니라 더 단단히 갖췄는데도 그렇다.
언제나 지나간 고통은 지금의 고통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법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언제나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나에게는 가장 심각할 뿐만 아니라 확실한 실체는 오직 현재 이 순간 밖에 없으니 그리 느껴진다.
군에서는 겨울에 야외보초 근무시간을 2시간 이내로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같다. 2시간 정도는 방한대책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전쟁경험을 통해 도출된 자료일 것이다. 그런데 야외 태극기집회에서는 무려 4시간 이상 야외 추위와 찬바람에 노출되니 개별적 방한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와 연단에 서서 진행하는 분들, 연사들, 그리고 대다수 참석자들인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오히려 잘 견뎌낸다. 정신력으로 버티나 싶고 여자가 남자들보다는 추위에 강한가 싶다.
행진시에도 방향에 따라 뒷바람이 되다가 되돌아오는 길은 여지없이 앞바람을 마주한다. 얼굴까지 꽁꽁 얼어붙는 기분이다. 행진 후 진행팀은 깃발을 수거, 정리하고 보관장소까지 이동하여 챙기는 등 마무리 하는 정성이 대견스럽다.
우리시대에 1년 넘게 주말마다 이 무슨 난리인가? 50여년전 생도시절에 임동원선배로부터 책으로 공부했던 '革命戰爭과 對共戰略' 내용들이 오랜 세월 지난 지금 우리 앞에 현실화 되고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북한은 한시도 그들의 기본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인민들의 삶은 팽개친 채 집요하게 그들 방식을 추구해왔다. 그 수십년 사이에 우리는 뭘 했는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기치아래 엄청난 국가발전을 이루었고 드디어 우리가 꿈꾸던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다.
자유와 번영으로 얻은 풍요로움에 취하여 이런 세상이 언제나 우리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속에 지금이 휴전상태라는 사실마저도 애써 외면한 채 단도리를 소홀히 해온게 사실이다. 그 틈새에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이 치밀한 계획으로 스며들어온 것이다.
북한은 6.25 무력남침을 시도했고 이후에는 수많은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요인암살과 사회혼란을 조성했으며 간첩을 보내거나 내부에 양성하여 지하조직으로 암약하다가 30여년 전부터는 사회 각분야 하부로부터 뿌리를 내려 점령해나가는 '陣地戰'을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 여러 결실들이 지금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아닌가?
우리가 소홀히 하면서 지은 업보를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것이려니 하면 누구 탓이라고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라도 그 여러 업보들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는 길이 된다면 이 정도 고생쯤이야 어찌 감당하지 못할까 싶어 애써 참아내고 있다. 누구 때문이고 남탓을 할 일도 아니다. 내 역할과 우리 국민들의 共業이 풀려가는 길이 된다면 어떤 고통인들 감내하지 못할까보냐 싶은 심정이다.
연일 한파경보가 발령되고 평창은 영하 19.8도가 된단다. 잔치에 날씨가 큰 부조인데 동계올림픽 개회식날 저녁에 찬바람까지 불면 예전 '황태덕장'이었던 그 곳에서의 추위가 걱정이란다.
이즈음의 추위에 관한 여러 속담들이 있다.
'大寒이 小寒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小寒에 얼어죽은 사람은 있어도 大寒에 얼어죽은 사람은 없다'
'立春추위에 장독 깨진다' 등의 속담이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났다고 마음 놓았다가 크게 당하니 조심하라는 말일게다.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이 절기로 입춘이 되니 아무래도 소한, 대한 추위보다야 덜하겠다 기대했던 2월3일 토요일 오후가 그랬다. 주말의 야위집회시마다 하도 추워 올겨울 혹독한 추위에 대해 지난주에 글을 써 올렸는데 지난 주말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싶게 더 춥다. 방한대책을 안해서가 아니라 더 단단히 갖췄는데도 그렇다.
언제나 지나간 고통은 지금의 고통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법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언제나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나에게는 가장 심각할 뿐만 아니라 확실한 실체는 오직 현재 이 순간 밖에 없으니 그리 느껴진다.
군에서는 겨울에 야외보초 근무시간을 2시간 이내로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같다. 2시간 정도는 방한대책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전쟁경험을 통해 도출된 자료일 것이다. 그런데 야외 태극기집회에서는 무려 4시간 이상 야외 추위와 찬바람에 노출되니 개별적 방한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와 연단에 서서 진행하는 분들, 연사들, 그리고 대다수 참석자들인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오히려 잘 견뎌낸다. 정신력으로 버티나 싶고 여자가 남자들보다는 추위에 강한가 싶다.
행진시에도 방향에 따라 뒷바람이 되다가 되돌아오는 길은 여지없이 앞바람을 마주한다. 얼굴까지 꽁꽁 얼어붙는 기분이다. 행진 후 진행팀은 깃발을 수거, 정리하고 보관장소까지 이동하여 챙기는 등 마무리 하는 정성이 대견스럽다.
우리시대에 1년 넘게 주말마다 이 무슨 난리인가? 50여년전 생도시절에 임동원선배로부터 책으로 공부했던 '革命戰爭과 對共戰略' 내용들이 오랜 세월 지난 지금 우리 앞에 현실화 되고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북한은 한시도 그들의 기본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인민들의 삶은 팽개친 채 집요하게 그들 방식을 추구해왔다. 그 수십년 사이에 우리는 뭘 했는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기치아래 엄청난 국가발전을 이루었고 드디어 우리가 꿈꾸던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다.
자유와 번영으로 얻은 풍요로움에 취하여 이런 세상이 언제나 우리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속에 지금이 휴전상태라는 사실마저도 애써 외면한 채 단도리를 소홀히 해온게 사실이다. 그 틈새에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이 치밀한 계획으로 스며들어온 것이다.
북한은 6.25 무력남침을 시도했고 이후에는 수많은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요인암살과 사회혼란을 조성했으며 간첩을 보내거나 내부에 양성하여 지하조직으로 암약하다가 30여년 전부터는 사회 각분야 하부로부터 뿌리를 내려 점령해나가는 '陣地戰'을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 여러 결실들이 지금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아닌가?
우리가 소홀히 하면서 지은 업보를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것이려니 하면 누구 탓이라고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라도 그 여러 업보들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는 길이 된다면 이 정도 고생쯤이야 어찌 감당하지 못할까 싶어 애써 참아내고 있다. 누구 때문이고 남탓을 할 일도 아니다. 내 역할과 우리 국민들의 共業이 풀려가는 길이 된다면 어떤 고통인들 감내하지 못할까보냐 싶은 심정이다.
세종로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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