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매서운 추위를 지금에 비길까?

이렇게 추위에 떨었던 적이 있을까 싶게 올 겨울은 춥다. 작년 겨울이 안 추웠던건 아닐테지만 지나고 보니 이 순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추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어디 추위뿐이겠는가? 지나간 어느때의 극심했던 고통, 서운함이나 화났던 일,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고 미워했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다 꿈속의 일과 다르지 않게 지난 추억의 하나일 뿐이다. 지금의 일 또한 그렇지 않을 리가 없을게다.

2~30년전 동계훈련시 호로 벗긴 찝차로 달리면 얼마나 추웠던지 얼굴과 입이 얼어 브리핑 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각까지 얼었는지 원활한 상황판단이 안된다. '무능화상태'가 된다. 만약 지휘관이 이 상태가 되면 부대지휘가 정상적이지 못해 부대의 승패와 부하들의 생사가 위험해진다. 지휘관 잘 보호되어야 부대전투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군인복무규율에 장교와 지휘관의 책무가 이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역경에 처하여서도 올바른 판단과 조치를 할 수 있는 통찰력과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
지휘관이 올바른 판단과 결심을 할 여건을 갖추는 것은 개인에게 제공되는 배려라기 보다 부대와 부하를 살리는 길이다. 군의 존재목적이 내우외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므로 전시 대비태세는 한시도 공백없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투하는대로 훈련하고 훈련한대로 전투하라''는 말처럼 군의 평소 규율과 문화가 곧 전시대비라 할 것이다. 근래 뉴스보도에 장군차량 운전병을 줄이는 병력감축을 추진한다는 조치를 접하면서 매우 우려스런 발상이라 생각된다. 평시의 관리유지에 중점을 둔다면 어디 이런 조치뿐이겠는가? 비싼 무기체계 하나 줄인다고 당장 표나는 일이 아닐지라도 피아 전투력우위 유지로 전쟁발발을 억지하는 불가피한 조치이다.

백성의 삶의 질을 팽개치고 미사일과 핵을 개발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을 인질화시키고 있는 북한의 사례가 그렇지 아니한가?

예전 어느 추운 겨울의 혹한기훈련시 초성리 골짜기 야외 개인천막 내부기온이 영하 14도였다. 다음날엔 하도 추워 병사들 5~6명이 함께 있는 그 가운데로 침낭들고 가서 잔적도 있다. 작년 겨울 추위도, 또 어제의 추위도 그 여러 추웠던 상황 중의 하나로 역시 지난밤의 꿈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주말마다 엄청 춥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나 사무실, 집안에 있는 경우엔 기온이 그리 내려갔나보다 하는 정도이지 직접 체감하는 시간은 잠깐잠깐씩일게다.

그런데 매주 토요일의 야외집회는 낮은 기온에다 찬바람속에 4시간 정도 노출되다 보니 냉기를 가려줄 아무것도 없다. 개인 방한대책이 전부이다. 지난 주말엔 하의 4겹, 상의 6겹에 양말 2겹, 가장 두꺼운 방한장갑에 목도리, 털모자 등 이만하면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손이 시려 손가락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나이든 할머니들이 더 많이 계신데 나혼자 춥다고 티낼 수도 없다. 마음이 추우니 더 추운건지 모르겠다.

이 시간, 전방지역 고지대는 눈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아마 영하 30도 더 되는 속에 전선을 지키는 장병들 여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추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발생에 비하면 우리나라 만큼 안정적인 곳이 많지 않다. 또 연일 해외뉴스에서 보도되는 자살폭탄테러나 총기난사 등의 사건들에 비해봐도 그렇다. 생각해볼수록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만 선진화된다면 우리나라의 살림살이에서 아쉬운게 없지 싶다. 그런데 남의 탓, 여건 탓만 할게 아니라 나 자신부터 선진 국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나 살펴보면 또 그렇지도 못하다. 정치인도 남이 아닌 우리 동료이고 선후배이며 우리 이웃이기는 하다. 우리 자식이라도 선진국민이 되게 하는 부모의 역할을 나는 하고 있나 살펴볼 일이다.

눈내린날 밤의 성복천 소나무

얼음물 속에 서있는 왜가리
자연과 야생은 사람처럼 호들갑떨지 않는다

추운 토요일 오후의 세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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