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가을의 어느날,
어느 작은 뉴스를 시작으로 차츰 눈덩이처럼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정말 그랬다는거야?"
얼떨떨해하고 있는 사이에 '作計'가 시행되듯 걷잡을 수 없이 차례차례 다음 상황들이 이어져 나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여
"어~~ 이게 아닌데"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미 진입된 뒤였습니다.
나라걱정에 사람들이 몇군데 모여 아직은 서툰 여러 구호를 외쳐가며 집회를 가졌습니다. 단풍이 막바지였던 늦가을이었지요. 조그만 태극기를 안주머니에 넣고 그리 많지않은 인파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따라 외쳤습니다. 어쩌다 아는 선후배, 고향사람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면 조금 더 힘이 났습니다.
몇번의 집회가 반복되면서 참가인원이 점차 늘어났고 그 인파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그 많은 태극기 인파가 외치는 소리와 기운으로 인해 저들이 조금이라도 우리 의견을 배려해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태극기도 더 큰 것으로 흔들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었고 국민과 우리 자식세대를 위한 어른들이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만들어온 주역이었던 어른들이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태극기 애국국민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국회와 언론과 검찰은 자기네 계획대로 착착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라고 4년의 생도시절동안 아침저녁으로 복창했던 예비역들이 바로 이때가 우리가 나서야 할 때라고 선후배들이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친구들끼리 집회에 참가했던 육사인들이 추운 겨울, 2월4일부터 대한문앞 집회에 피켓이나 기수별 표식을 들고 '구국동지회'의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3월 10일 오전 11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열기로 넘쳤던 집회에 적막한 정적이 내려앉으며 굳건히 서있던 이들이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치가 무너져내리는 소리없는 혁명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저기 펄럭이고 서있는 붉은 육사깃발이 군중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잠시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한달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하 이러다가는 전쟁도 없이 나라가 적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구나"하는 절박감은 더 커졌고 이제는 죽는 길이 사는 길이 되겠다는 더 큰 사명감이 일어나 이 땅에서 종북좌파를 척결하는 날까지, 나아가 자유평화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 구국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또 매주말마다 구국의 깃발로 모였습니다.
탄핵국면이 어느새 대선국면으로 바뀌면서 대통령후보들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초심으로 한결같이 외치고 노력했던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는 국가안보적 입장에서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전환된 것으로 인식하여 그동안 구국활동에 함께했던 동지들이 정치적 활동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거론하며 태극기집회 참가 동지가 현저히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의 초심이었던 종북좌파 척결이나 자유대한민국 지키기 어느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용만 썼을 뿐이지 달라진게 없습니다. 달라지게 하는 일은 이제 시작인데 이 중요한 싯점에 우리는 애국의 깃발을 내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육사총구국동지회에서 수차의 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전개되어 가는 상황을 고려하여 전체의 행동방향을 설정해왔습니다. 격렬한 토의를 3~4시간 거치면서도 의견통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수결 투표까지 하면서 그래도 우리 육사 총구국동지회가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지속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방향으로 가까스로 의견이 모여졌습니다.
당장 다음주가 되면 선거법 관련하여 행동에 제한이 될거라는 점을 감안하여 4.15 태극기집회에서 구국동지회 활동의 1차 마감이벤트와 함께 선거기간 중에는 개별적 구국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추운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나라지키는 우리의 결의는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대선국면이 시작된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곧 나라를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생사갈림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와서 방관자가 되어버린다면 누가 대신 나서서 나를 지켜주고 우리 자식들의 앞날을 지켜주겠습니까? 내가 해야하고 나밖에 나를 대신할 이도 없습니다.
4.15 하루 집회에 나간다고 과제가 풀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뿌리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작은 노력들의 결실들로 이루어지게 될테니까요.
육27기 구국대장 전인구, 총무 이화영
겨울지나 시절인연 닿으니 기다리지 않아도 봄꽃은 만발하는데
어느 작은 뉴스를 시작으로 차츰 눈덩이처럼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정말 그랬다는거야?"
얼떨떨해하고 있는 사이에 '作計'가 시행되듯 걷잡을 수 없이 차례차례 다음 상황들이 이어져 나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여
"어~~ 이게 아닌데"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미 진입된 뒤였습니다.
나라걱정에 사람들이 몇군데 모여 아직은 서툰 여러 구호를 외쳐가며 집회를 가졌습니다. 단풍이 막바지였던 늦가을이었지요. 조그만 태극기를 안주머니에 넣고 그리 많지않은 인파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따라 외쳤습니다. 어쩌다 아는 선후배, 고향사람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면 조금 더 힘이 났습니다.
몇번의 집회가 반복되면서 참가인원이 점차 늘어났고 그 인파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그 많은 태극기 인파가 외치는 소리와 기운으로 인해 저들이 조금이라도 우리 의견을 배려해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태극기도 더 큰 것으로 흔들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었고 국민과 우리 자식세대를 위한 어른들이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만들어온 주역이었던 어른들이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태극기 애국국민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국회와 언론과 검찰은 자기네 계획대로 착착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라고 4년의 생도시절동안 아침저녁으로 복창했던 예비역들이 바로 이때가 우리가 나서야 할 때라고 선후배들이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친구들끼리 집회에 참가했던 육사인들이 추운 겨울, 2월4일부터 대한문앞 집회에 피켓이나 기수별 표식을 들고 '구국동지회'의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3월 10일 오전 11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열기로 넘쳤던 집회에 적막한 정적이 내려앉으며 굳건히 서있던 이들이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치가 무너져내리는 소리없는 혁명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저기 펄럭이고 서있는 붉은 육사깃발이 군중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잠시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한달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하 이러다가는 전쟁도 없이 나라가 적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구나"하는 절박감은 더 커졌고 이제는 죽는 길이 사는 길이 되겠다는 더 큰 사명감이 일어나 이 땅에서 종북좌파를 척결하는 날까지, 나아가 자유평화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 구국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또 매주말마다 구국의 깃발로 모였습니다.
탄핵국면이 어느새 대선국면으로 바뀌면서 대통령후보들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초심으로 한결같이 외치고 노력했던 자유민주체제를 지키는 국가안보적 입장에서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전환된 것으로 인식하여 그동안 구국활동에 함께했던 동지들이 정치적 활동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거론하며 태극기집회 참가 동지가 현저히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의 초심이었던 종북좌파 척결이나 자유대한민국 지키기 어느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용만 썼을 뿐이지 달라진게 없습니다. 달라지게 하는 일은 이제 시작인데 이 중요한 싯점에 우리는 애국의 깃발을 내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육사총구국동지회에서 수차의 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전개되어 가는 상황을 고려하여 전체의 행동방향을 설정해왔습니다. 격렬한 토의를 3~4시간 거치면서도 의견통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수결 투표까지 하면서 그래도 우리 육사 총구국동지회가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지속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방향으로 가까스로 의견이 모여졌습니다.
당장 다음주가 되면 선거법 관련하여 행동에 제한이 될거라는 점을 감안하여 4.15 태극기집회에서 구국동지회 활동의 1차 마감이벤트와 함께 선거기간 중에는 개별적 구국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추운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나라지키는 우리의 결의는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대선국면이 시작된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곧 나라를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생사갈림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와서 방관자가 되어버린다면 누가 대신 나서서 나를 지켜주고 우리 자식들의 앞날을 지켜주겠습니까? 내가 해야하고 나밖에 나를 대신할 이도 없습니다.
4.15 하루 집회에 나간다고 과제가 풀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뿌리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작은 노력들의 결실들로 이루어지게 될테니까요.
육27기 구국대장 전인구, 총무 이화영
겨울지나 시절인연 닿으니 기다리지 않아도 봄꽃은 만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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