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5.11(토) 저녁. 복정역 부근 맛집에서

여동생 생일

그 자녀들 4남매가 자기 부모님 생신 알아서 다 챙기고 있을테지만 우리 어른 형제간들은 그냥 수시로 만나고 싶어 이것저것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자주 모인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봄에 막내여동생이 태어났고 그해 가을에 자형이 우리집으로 장가를 오셨으니 우리 5남매는 자형과 함께 60년 넘게 평생을 함께 해오고 있다. 이제 자형이 80중반을 넘어섰고 누님은 걷기가 불편하시니 예전처럼 함께 멀리로 여행다니기도 쉽지 않아 이런 식사모임이라도 자주 주선하고 있다. 

어릴적 고향동네에서 율곡면소재지가 있는 우리 초등학교로는 신작로와 한참을 나란히 가는 황강 하류쪽을 따라 동쪽으로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모여곡'이 우리동네 앞 절벽길을 지나는 '개비리'길이고 거기서 십리를 더 가서 매실부락에서 42일간 머물면서 부근에 위치한 권율도원수부와 작전을 논의하면서 황강변에 둔전을 일구고 군량조달도 하신 기록이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6년동안 매일 그 백의종군로로 학교를 다닌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자형은 동쪽면인 초계면에 살면서 서쪽 합천읍에 있는 고등학교로 편도 8km가 넘는 길을 왕복하면서 반대쪽으로 학교를 가는 우리 일행과 매일 마주쳤다. 그 여러 초등학생 중에서도 유난히 두 학생이 자형의 눈에 띄었단다.
'저 학생한테 누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高3이었던 어느날 우리동네에 사는 자형 인척 아주머니가 중매를 서서 읍내 자전차방 아주머니와 우리집을 와보았는데 그 집에 학교다닐때 마주쳤던 뒤통수가 납작하고 얼굴이 유난히 눈어띄던 두 학생이 있었고 그들의 누나라는 말에 안심이 되더라는 말씀을 근래에 까지도 하고 계신다.

어릴적의 생활에서나 우리가 서울로 진출하는 계기를 자형누님이 먼저 자리잡아 마련해 주신 덕분에 우리 5남매는 그렇게 함께 60년을 지금의 여건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큰 동생네는 일본인며느리가 친정에 가서 출산 후 몸조리하고 귀국할때 함께 온다고 일본 사돈댁에 가서 손주를 안고 흐뭇하게 찍은 사진을 보내오고 여기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어느 집안이고 어디 아픈데 없이 다 잘되고 있는 그런 집이 세상천지에 한집이라도 있겠냐마는 그냥 형편에 맞게 살면 그게 현명한 일일게다.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는 지금의 일들 모두 별일 아니게 사라질 것이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으며 누가 나에게 어떤 서운한 말을 했거나 화나게 했거나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으리라. 지금 한가지라도 따뜻한 말과 미소로 주변에 좋은 분위기가 되게 한다면 그게 잘사는 길이 되지 않겠나?

누님네 큰아들 욱이가 사촌들의 맏형이다. 부모님을 차로 모시고 와서 재롱까지 떨어준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