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두장의 달력을 남겨두고 11월말에는 송년모임들이 계획되어 있다. 세월의 흐름이 창문틈으로 백마가 지나가는 것처럼(人生如白駒過隙) 빠르다고 한 옛말이 실감난다.
단풍이 절정인 양재천과 양재시민의숲. 고운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내심으로는 가는 가을에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이 혼란스러움을 어떻게 정리할까?
수평적인 안목위주로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로 옆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고 세상 모든 것들이나 현상들도 역시 다 이것과 저것으로 나눠서 보는 안목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분별하고 변해가는 과정에는 익숙한데 그 내면의 '변하지 않는' 본바탕을 보는데는 익숙치 않다. TV화면의 요란한 영상에 빠져 드라마나 쇼를 보지만 스위치를 끄고 나면 그제서야 바탕의 스크린이 보인다. 스마트폰에서도 여러 아이콘들을 올려놓고 온갖 app들을 작동시키면서 그 영상들을 본다. 화면을 끄고나면 비로소 그 바탕이 보인다. 바탕에 올려져 있는 여러 아이콘이나 보이는 영상들이 다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들이다. 이를 모르지는 않는데 우리네 삶에서는 그렇게 보지 못하고 있다. 바탕에서부터 온갖 영상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여러 형상으로 나타나서 변해가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화면위의 영상, 그림자와 우리네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수평의 안목'에 익숙한 우리의 습관을 이제는 '수직의 안목'으로 변화시켜 보면 어떨까? 파도가 일었다가 바다로 되돌아가듯 바탕에서부터 일어났다가 다시 바탕으로 되돌아가는 그런 안목으로 세상을 인식해보자는 것이다. 어떤 파도가 일어나거나 바다는 변함없듯이 세상의 본바탕에서 일어난 어떤 것이나 현상에도 그 바탕은 전혀 상처받거나 변하거나 하지 않고 늘 그대로이다. 그러니 태어나거나 사라진 적도 없다. 영원한 오늘, 오~늘, 長今이고 불생불멸이다. 이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 처럼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다 본체바탕의 작용일 뿐이고 그 근본바탕은 늘 '영원한 현재'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로되 오래 보고 느끼면서 살아온 習에 익어 있다보니 고운 단풍이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떨어지는 낙엽에 가슴한켠 찬바람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화면위의 화려한 영상들이 바탕생명력의 작용들이라 그 영상이 바탕과 따로 둘일 수가 없다. 즉, 色이 곧 空이다. 사바세계와 해탈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生死조차도 서산대사의 말씀처럼 生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死는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집착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집착하여 매달릴 일도 없지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이 내 앞에 계속 새로운 時空의 모습으로 나타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이 순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따로 時間과 空間에 닿는 통로가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내가 말과 행동으로 어떤 일을 하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작용으로 일어난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다만 집착하지 않고 흔적없이 나는 새처럼 그렇게 言行하면 될 것이다. 거기에서 '전력투구, 완전연소' 하는 것이다.
연말을 앞둔 이 가을에 우리네 삶의 실상을 되새겨 본다.
11.8 오전 양재시민의숲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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