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9. 12(수) 15:13
●만남 :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용산역에서 용문행 14:09 출발)
●저녁식사 : 17:30 양수리 두물머리밥상 (031-774-6022)

막무가내로 속썩이는 아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우리를 괴롭혔던 올여름 무더위였다.

삐쩍마른 나같은 체질도 힘들었는데 다른 이들이야 오죽했을까? 언젠가는 떠나지 않을 수 없을거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당시 피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무척 심각했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여름더위에 고생많으셨지요?'' 정도이다.

8월 중순, 양수리에 연꽃이 활짝핀 풍경을 보며 답사를 하고싶었는데 더운 오후시간에 나들이하자는 말을 감히 꺼낼 수가 없을 상황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무더위를 몰아내니 여름꽃도 손잡고 함께 떠나버리고 말았다.

'時空'이 원래 따로가 아니라 함께 붙어있기는 한데 공간의 변화는 더디게 나타나 마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시시각각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동안에 예전에 와본 곳을 다시 와보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장탄식을 하게 되나 보다.

그래도 공간이동은 시간이동보다 훨씬 쉬워 분위기를 바꾸는데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된다. 뭔가 잘 안풀리고 답답할때 여행을 훌쩍 떠나는 공간이동을 하면 순식간에 딴 세상에 온듯한 착각으로 집착을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S대 행복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가 행복해지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권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역시 임시방편이지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니다.

남양주 다산유적지에서 만나는 다산 정약용선생.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년 이전이 영조, 정조시대였고 그때가 다산선생이 활동했던 시대였다. 문화관 건물 입구 맞은편 길가에 전시된 나무와 로프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는 '거중기'가 수원성을 건설할 그 당시에 세계최고의 기술이었다는게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산업혁명으로 엔진이 만들어지고 증기기관차가 운행되었으며 에디슨이 이것저것 얼마나 많은 발명을 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불과 근세 20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지 그 이전에는 금속인쇄, 도자기, 화약, 무기체계, 의학, 건축 토목, 천문관측 등의 과학분야와 철학, 정치 등 인문사회분야에서 까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유물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다산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몇가지 특이한 관심사항이 있다.

1)다산이 유배가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주옥같은 500여권의 저술이 있었겠는가? '귀양도 축복이었다'고 말하니 친구들이 축복까지는 아닐테고 인생의 변환기회가 된 것이라고 한다.

2)강진으로 귀양갔는데 거처할 곳이 없어 주막에서 수년간 지냈다 한다. 주모와의 대화 중에 인상적인게 있다. 자식은 머니 성씨를 안따르고 왜 아버지 성씨를 따르느냐고 물었는데 다산의 답이 명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명쾌하게 말했다. 볍씨를 이논 저논에 심어도 벼가 나고 콩을 이밭 저밭에 심어도 콩이 나는 원리라 하니 다산이 주모의 지혜로움에 겸손해 졌다고 한다.

3)유배간 아버지로 인해 출세길이 막힌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보내 학문에 게으러지 않게 독려했다. 그 중 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웃에 도움을 주고 많이 베풀어라.
나는 저이에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저이는 나에게 그리하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을 혹시라도 낸다면 너가 그동안 쌓아온 덕이 바람에 잿가루가 날아가듯 사라질 것이니라''

4)'하피첩'이 전해져 온다. 수원의 어느 모텔 여주인이 빈박스를 내놓고 할머니가 가져가려는데 할머니 수레에 눈에 띄는 책이 있어 폐지와 바꾸자고 했다. 방송국 진품몀품에 내놓으니 1억을 호가하는 진품으로 확인되었고 이후 경매시장에서 7억5천만원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인수했다. 유배 10년 되던 해에 아내가 시집올때 입었던 노을빛 치마를 보냈고 다산이 치마폭을 잘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을 나중에 하피첩으로 엮은 것이다.

생가 마루에 걸터앉아 어런저런 일화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생가 뒤쪽 묘소까지 가보았다

  <의자>    이정록 / 시인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팔당호를 바라보며 시도 낭독하고 오순도순 정담도 나눈다

이게 무슨 풀일까?
검색에서는 강아지풀로 나오는데 그건 아니다.
구재림동기가 생물선생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전송하니 '수크령'이란다. 흔한 풀인데 생소한 이름이다. 수크령이 있으니 암크령이 있나 검색하보니 역시 있다.

암크령

'결초보은' 고사에 나오는 그 풀이란다

유적지와 생태공원을 산책하고 56번 마을버스를 타니 운길산역에서 올때 탔던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그 버스다. 우리 일행 11명이 안탔으면 거의 빈차로 다닐뻔 했다. 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니 별로 답변이 없다. 아마 운전에 집중해서 그렇나 보다.
 양수리 두물머리밥상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세미원 입구 돌아보고 양수역에서 19:37 전철로 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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