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일) 10:30, 국방부원광사에서
원광사 앞마당의 모과가 노오랗게 익고 감이 빨갛다. 그 위의 가을하늘은 유난히 파아랗다. 거기 어디에도 행복이나 불행, 근심걱정도 매달려 있지 않다. 매주 만나는 원광사 금강문이나 건물도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이다. 다만 거기로 들락거리는 불자들은 본래 '맑은 거울'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새 먼지가 끼어 흐릿한 상태가 된데다가 자기가 만든 온갖 근심걱정들을 한짐씩 지고 드나들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법당에서 만나는 연륜이 쌓인 노보살들의 미소는 부처님 미소처럼 아름답다. 원광사의 영험과 법사님 법문 덕분인가 보다.
매주 일요일마다 법회에서 지효 주지법사께서 길을 일러주신다.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행복하게 살고자 이미 평생동안 힘들여 살아오고 계신 분들에게 새삼스럽게 일러 줄 길이 있을까 싶지만 왜 없겠는가? 삶에 푹 파묻혀 살다 보면 꼭 이 길이 아니다 싶은데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그런가 하면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나 당황스런 경우도 없지 않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져 예전같지 않는 경우도 많다.
五觀의 경지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바삐 살아가다가도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자기의 '본마음'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일요법회가 된다. 법회에 참례하여 법문을 듣는 것은 곧 불난 집에서 빨리 나오라는 것이고 또 집나간 본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는 '회광반조'의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지효 주지법사 법문요지>
수행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서이다.
'화두'
이뭐꼬? 시심마?
화두로 무엇을 찾으려는가?
주인공을 찾으려는데 그 주인공은 어디에 있을까?
내몸이 내껀가?
내꺼면 내맘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된다. 얼굴 주름살도 펼 수 없고 흰 머리카락을 까맣게 하지도 못한다. 심장이 내꺼냐? 잠깐이라도 쉬게 할 수 없다.
손발은 내꺼냐? 다 마찬가지다.
마음은 내꺼냐? 내맘대로 되나?
역시 안된다. 마음이 괴롭다. 괴롭지 않으려 하지만 잘 안된다. 일어나는 마음이 아무리 왔다갔다 해도 본마음 자리는 변함이 없다. 주인공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어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순간 선택한 결과이다. 그게 지금의 나다.
매 순간순간 선택한 결과가 '나'
전생과 내생을 알 수 있을까?
6신통이 열리면 보인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도 다 알 수 있다. 내 전생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전생의 결과물이다.
지금 모습이 과거 모든 선택의 결과이듯이 미래도 알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선택의 결과가 바로 미래이다.
어떻게 하면 매번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지혜로움이다.
왜 바른 선택을 못하는가?
1)무지하거나(無明)
2)게으르거나
3)용기가 없어서이다.
일단 방향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이다. 그 다음에 인연이 되면 그 방향으로 속도가 나게 된다. 방향이 잘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달려가도 잘못하면 목표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된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지금보다 건강이 더 좋아지면
그때 행복해 지겠는가?
부처님 당시에 속가 가족이나 나라가 망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부처님은 늘 평온하셨다. 행복은 외부적 환경여건이 조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목에 따라 달라진다.
늘 불안한가?
내가 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한가?
無智하지 않게, 게으르지 않게, 용기를 잃지 않게 자기자신을 성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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