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월) 1500~
●답사 코스: 조선호텔 부근의 원구단, 황궁우 ~시청 별관 전망대에서 정동일대 조망 ~ 정동교회 ~이화학당 ~ 중명전 앞 ~ 구 러시아공사관(아관파천 현장) ~ 경복궁역
조선의 도읍지로부터 600년 넘게 이어져온 서울은 여기저기 역사적 흔적이 산재해 있다. 매번 지나다니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최근 수개월 동안에 관광을 겸한 역사문화 탐방을 계속하는 중에 지난 역사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는 기회가 되고 있다.
12월 답사는 서울시청 청사에 모여 소공동과 정동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라도 안 가보고서는 그 깊은 내막을 알 기회가 되지 않는다.
시청역4출 시청본관 지하에 모여
바로 100여년 전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 대처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500년 조선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잃게 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35년간 잃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해왔으나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했을 뿐 우리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읺어버리기 전에 미리 단속을 하지 않고서는 죄없는 백성들이 그 피해를 다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에서 수도 없이 겪어왔다. 근세에 우리가 아는것 만으로도 고려시다 몽고의 28년간 7차에 걸친 침입,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6.25전쟁 등으로 전 국토가 성한데 없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가기도 했다. 다행히도 최근 60여년동안은 후대에서 보면 국가발전이 세계최고로 이루어지면서 국위를 선양한 태평성대가 아니었느냐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으니 말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갑작스런 성장과 변화가 우리의 당대에 일어남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가 정서적으로 그 큰 변화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하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이 선진화되지 못한 면이 많다.
더 큰 문제는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이 서로 다른 체제를 적용함에 따라 백성들의 삶의 수준 격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고 서로 상생의 길을 도모하지 않고 북쪽에서는 끊임없이 남쪽에서 이룬 성장의 결실을 뺏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여건 가운데서도 이만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세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다.
그 하나는 한민족의 타고난 우수성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그 우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결과였으며
세번째로는 계속된 성장활동을 안보적으로 뒷받침해준 덕분이었다. 한미동맹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이런 여건이 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고마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청 지하 공사 중에 발굴된 옛 흔적들을 잘 보존해 두고 있다
고종이 황제국 선포 기념으로 조성한 돌북(石敲)
돌계단 양쪽 난간의 문양도 황제국을 상징하여 상징적인 동물이 서수(瑞獸)로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역 4출구 뒤쪽의 맛집 식당에서 못다한 토의가 이어지면서 송년 모임
동기회의 현 사무총장
●답사 코스: 조선호텔 부근의 원구단, 황궁우 ~시청 별관 전망대에서 정동일대 조망 ~ 정동교회 ~이화학당 ~ 중명전 앞 ~ 구 러시아공사관(아관파천 현장) ~ 경복궁역
조선의 도읍지로부터 600년 넘게 이어져온 서울은 여기저기 역사적 흔적이 산재해 있다. 매번 지나다니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최근 수개월 동안에 관광을 겸한 역사문화 탐방을 계속하는 중에 지난 역사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는 기회가 되고 있다.
12월 답사는 서울시청 청사에 모여 소공동과 정동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라도 안 가보고서는 그 깊은 내막을 알 기회가 되지 않는다.
시청역4출 시청본관 지하에 모여
바로 100여년 전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 대처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500년 조선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잃게 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35년간 잃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해왔으나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했을 뿐 우리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읺어버리기 전에 미리 단속을 하지 않고서는 죄없는 백성들이 그 피해를 다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에서 수도 없이 겪어왔다. 근세에 우리가 아는것 만으로도 고려시다 몽고의 28년간 7차에 걸친 침입,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6.25전쟁 등으로 전 국토가 성한데 없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가기도 했다. 다행히도 최근 60여년동안은 후대에서 보면 국가발전이 세계최고로 이루어지면서 국위를 선양한 태평성대가 아니었느냐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으니 말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갑작스런 성장과 변화가 우리의 당대에 일어남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가 정서적으로 그 큰 변화에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하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이 선진화되지 못한 면이 많다.
더 큰 문제는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이 서로 다른 체제를 적용함에 따라 백성들의 삶의 수준 격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고 서로 상생의 길을 도모하지 않고 북쪽에서는 끊임없이 남쪽에서 이룬 성장의 결실을 뺏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여건 가운데서도 이만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세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다.
그 하나는 한민족의 타고난 우수성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그 우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결과였으며
세번째로는 계속된 성장활동을 안보적으로 뒷받침해준 덕분이었다. 한미동맹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이런 여건이 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고마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청 지하 공사 중에 발굴된 옛 흔적들을 잘 보존해 두고 있다
고종이 황제국 선포 기념으로 조성한 돌북(石敲)
돌계단 양쪽 난간의 문양도 황제국을 상징하여 상징적인 동물이 서수(瑞獸)로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역 4출구 뒤쪽의 맛집 식당에서 못다한 토의가 이어지면서 송년 모임
동기회의 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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