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실천하고 있어야 전통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저녁, 에어컨도 안되는 우리집에 5남매와 손주까지 17명이 모여 부친 기제사를 올렸다.

어른이 안계시면 자녀 형제간들 왕래도 뜸해지는데 80넘은 자형 누님이 어른으로 동생들 챙기시고 또 이 전통이 아랫대의 사촌, 고종, 외사촌 사이에도 이어지게 여러가지 배려도 하신다. 방콕 가있던 며느리, 손주도 방학이라 동참했다. 연로하신 자혐누님은 매번 막내 여동생네가 차로 모셔오고 있으니 고맙고 생질네는 우리 아파트 가까이 살고 있어 꼭꼭 참여한다. 2년전 서울 대방동에서 용인수지로 이사오면서 걱정했던 것이 이런 모임시 멀어서 불편해지면 어떨까 하는 점이었는데 그런대로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전통도 좀더 간소화하지 꼭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냐고 하겠지만 편하게 하는 것만이 바른길은 아니지 싶어 여건 될때까지는 실천하고 있다. 고전의 책이나 이론에 제시된 어떤 것이라도 어디에서 누군가 시행하고 있어야 전통이라 할 것이다.

어린시절 시골에 근대화바람이 불때는 변화가 유행처럼 번졌다. 오래 지켜왔던 우리 고유의 것들은 전부 고리타분한 미신이고 버릴 것이라고 여기며 대부분 던져버렸다. 책장에 있던 고문서보다 당장 먹거리가 급했고 삐딱하게 닳은 놋쇠숫가락, 놋그릇, 흰사발 다 고물로 바꿨다. 70년대 초 전기가 들어오니 호롱, 등잔, 호야 등도 쓸데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우리 5남매의 공책은 다 보관하셨다.

심지어는 600년 이어져오던 성리학마저도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같은 신학문에 밀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다. 전통종교나 무속들이 미신이 되어 역시 밀려났다. 과학으로 인해 물질문명이 발전됨에 따라 삶의 편리함과 질이 높아졌지만 내면적 의식이 단기간에 함께 성숙되지는 못한 것같다.

가족모임이 곧 소통과 대화의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조상님과도 축문으로 대화를 한다. 알아들으시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알아들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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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次 戊戌 6月 丙午朔 二十九日 甲戌 孝子 00과 자녀들, 그리고 손주들이 아버님의 기일에 함께 모였습니다.

올 여름은 111년만의 무더위라고 할만큼 덥습니다. 이런 무더위가운데도 오늘은 모처럼 자녀 5남매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고 그 시절에 있었던 자녀와 손주들보다 이후에 더 많은 손주들이 태어나 이제 새 가정을 이루고 사회 곳곳에서 여러 역할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아버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여러 지혜의 가르침들을 상기하면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고 있고 또 손주들은 국가의 인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들 마음속에 부모님께서 쌓으신 음덕과 가르침이 늘 함께하고 있고 저희들 또한 자손들과 후손을 위해 덕을 쌓아가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웃과 사회와 세상에 도움되는 여러 역할을 해 나가고 있음을 고합니다.
 
작년도 이맘때 이후 한해 사이에도 가족들의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님 자형 내외분은 여전히 집안의 어른으로 자리잡고 계시고 자녀 손주들 모두 직장과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형님도 참례하셨습니다.
자손들과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 모두 다복하게 살고 있으나 생활에 가끔은 어려움 처지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으로 모두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00이와 00네는 머지않아 식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외증손주 00이 00이는 싱가폴에, 증손녀 00이는 태국 방콕으로 유학가서 공부합니다. 후손들 모두를 잘 지켜봐 주세요.
 
가정을 이루는 근본은 화목과 사랑입니다. 온 가족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부모님께서 이어주신 전통을 잘 실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일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했거나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자녀 손주들까지 잊지말고 챙기시어 큰 사랑을 베푸소서.
 
저희들에게 이어주신 정성과 사랑은 앞으로도 내리사랑으로 집안의 좋은 전통이 되게 해나갈 것입니다.
 
조촐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하시오소서.
 
戊戌년 陰 6월 29일, 자녀 손주 일동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 올립니다.

향을 피우고 洗盞을 하는 강신례, 참신례

머지 않아 2세대가 해나가야 할 차례다

밤하늘이 여름의 끝자락임을 보여준다

늦은 저녁식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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