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6(수)
요즘 시대에 설명절을 풍습 방식대로 쇠는 집안이 도시생활에서는 많지 않아 보인다. 여건이 안되기도 하지만 전통을 고루하게 여기는 탓도 있다. 윗대 어른이 계신 집안이 점차 줄어들고 우리 세대는 산업화로 대다수가 고향을 떠나 직장위주로 자리잡아 살았다. 형제간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살게되고 그 아래 자녀들인 사촌끼리 교류가 적다. 어느 형제간 집에 여러 사람이 모이고 그 뒷바라지에 부담을 느껴 모일 여건이 잘 되지 않는다.
어른들이 계실 때는 그나마 부모님을 중심으로 모이다가 어른들이 안계시면 형제자매가 잘 모여지지 않게 된다. 형제간 중에 누군가 나서서 주선하면 되는데 우리는 아직 여건도 되고 실천을 잘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녀세대들에게도 자연스레 전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설날의 차례, 세배, 성묘의 3종셋트 중에 성묘는 원래 한식과 추석에 하는 전통이 있다. 설날에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로서 차례를 지내고 한식에는 겨울 동안 돌보지 못한 산소를 돌보는 성묘를 하며 추석에는 햇과일과 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는 차례와 성묘를 지낸다. 그런데 지금은 설명절에도 가족친지들이 모인기회에 성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날 서울근교의 공원묘지마다 성묘객들로 붐비고 멀리 고향으로도 성묘를 간다.
명절 풍습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실천하면 집안의 화합과 자녀, 손주들의 가정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설, 추석 명절에 동참하다 보면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가정교육이 되는 것같다.
從(세로)의 법칙과 橫(가로)의 법칙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먼저 천국과 義를 구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삶의 실천은 이렇게 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런 네가지 기본을 갖추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은 이런 말을 몰랐어도 생활자체가 그런 삶이었던 것같다. 하늘의 법도를 알고 순응하며 겸손하셨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까지도 함부로 대하고 취급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꺼리로 고달픈 삶이었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불평보다는 긍정적 실천을 하셨다. 집안은 아이들로 북적대도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중요한 네번째의 '쉬지말고 기도하라'라는 덕목을 언제나 실천하셨다. 마을의 공동우물인 도라새미에 새벽에 아직 아무도 떠가지 않은 맑은 물을 머리에 이고와서 장독대위에 사발그릇에 떠놓고 두손을 빌으셨다. 음력 어느날엔가는 들판 건너 하복골 개천의 어느지점에 몇가지 제물을 소쿠리에 이고 가서 용왕기도를 올리셨다. 거기가 어딘지 언제 다녀오셨는지 우리도 잘 모른다. 하늘, 땅, 물, 나무, 바위, 장독대 등 어느 곳이라도 다 기도터였다. 곳곳마다 도량 아닌 곳 없었고 기도아닌 시간이 없었던 것같다.
교회, 법당, 성당에 가거나 그럴 형편이 안되면 물을 떠놓고라도 꼭 빌고 기도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자기자신에게 기도를 해도 좋다. 언제 어디서든 꼭 해야할 일이다. 정성이 모이는 만큼 반드시 결과가 있다. 빨리 오거나 조금 늦게 올 수는 있어도 반드시 온다. 굳이 바라는바 없이 기도한다면 큰 공덕이 될 것이고 자신을 위해서보다 남을 위하고 모두를 위한다면 더 큰 공덕이 될 것이다.
학력이 없고 지식은 일천했어도 부모님들은 공부 많이한 우리들보다 더 지혜로우셨고 무엇보다 언행이 일치하셨다. 착하게 살아라, 이웃을 사랑하라 등의 말씀만 하신게 아니라 실천하셨다. 누가 집에 와도 맨입에 보내지 않으셨다. 먹을게 없으면 물이라도 한그릇 떠다 드렸다. 남이 어려워할때 도와주어라, 실제 도우셨다. 고향농촌 동네에서의 삶은 유리상자처럼 서로 다 보인다. 저 사람 생각은 어떻고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다 보이고 서로 다 안다. 숨을 곳이 없다. 그 조상은 어떻고 그 자손들은 어떤지까지도 안다. 그런데 도시에서의 삶은 숨을 곳이 많다. 누가 누군지 서로 모르니까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없다.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조차 않는다.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안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다 저장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향집과 선산 성묘를 다녀오는 고속도로에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보며 우리네 삶의 나침판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된다.
성묘하러 고향으로 출발
오후 3시반경에 차로 성복동 집을 나서서 평소보다 한산한 고속도로로 대구 큰처제네 집에 저녁식사 시간에 도착했다. 작은처제까지 합류하여 어른들이 안계서도 처가댁 명절모임이 되었다. 매번 명절때마다 이렇게 모이자고 했다.
동서가 직접 바리스타로 커피를 내려준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고향집에 도착
아침에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성묘 출발
현관문에 입춘방을 붙혔다
황매화가 곧 꽃망울을 터뜨릴 듯하다
개비리를 지나 사양리 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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