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0만명 가까웠던 합천군 인구가 지금은 5만 아래로 떨어져 인구증가를 위한 여러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 10여년의 추세를 보면 그 여러 노력에도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유지되고 있는데 만족해야 할 정도이다.

율곡면의 인구는 3,000여명에서 지금은 1,000여명 수준이라니 그래도 17개면에서 평균 이상은 된다. 아직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노인네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자녀들이 고향으로 올 것같지 않다. 율곡면의 6개 초등학교 중에 면소재지 초등학교 하나만 남고 폐교되었는데 그 1개 학교도 전교생이 27명으로 한학년이 3명~6명 수준이다. 학생 27명에 교직원은 교장, 교감 등 17명이나 되는 실정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전환되면서 그 필요한 인력이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대거 이동되었다. 농사지어 먹고살던 시대에서 이제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시대로 바뀌어 갔다. 공장에 간 누나들 덕분에 동생인 학생들이 외지에 나가 공부할 기회가 왔고 개천에서 용나는 기적들이 여기저기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서울 및 근교로 고향사람들이 연줄 연줄로 많이 올라와 30여년간 터전을 잡았고 이제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어릴적 추억이 있는 고향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아련히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걸어서 오가면서 생긴 수많은 사연들, 지게지고 나무하러 다니고 소먹이러 다녔던 어떤 이야기를 떠올려도 다 비슷하게 이야기가 통한다. 공통적인 문화가 있으니 쉽게 선배후배, 형님동생 관계가 된다.

서울에서 태어난 우리네 자녀들은 그런 추억이 없으니 자기네들이 서울사람인 것으로 여긴다. 향우회가 계속 이어지기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향우회 전성기라 할 만하다. 고향 초등학교, 중학교 선후배관계가 많으니 곳곳의 모임에서 만날 기회가 많다.

어릴적의 지극한 가난으로부터 당시로서는 상상이 안되는 수준의 삶까지 다 체험한 우리세대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세대가 아닐까 싶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과분한 삶이다. '고대광실' 같은 집에서 예전의 임금님보다 더 잘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데 행복도는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성적순도 富의 정도도 아닌 내면적 화목과 상부상조, 그리고 작은 성취들로부터 보람으로 나타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같은 면 선후배들의 모임에서 훈훈한 정을 듬뿍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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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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