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월) 찬바람이 부는 오후에
코스: 남한산성 비석숲~ 남문(지화문)~ 수어장대 ~ 만해기념관~ 행궁~ 주차장

따뜻함은 그저 오지 않나 보다.
몇차례 소용돌이가 친다.
소용돌이는 곧 막바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난이 곧 희망이다.
세상이치가 다 그렇다.

절기로 곡우날 곡우비가 내리더니 다음날은 비와 함께 찬바람까지 불고 또 그 다음 날은 더 거센 바람이 부는 추운 날이 될거라고 한다. 순탄하게 지나가는 봄이 별로 없었지만 올해는 유난히 4월 중순에 강원도와 제주도에 눈까지 많이 내렸다. 그런 날들이 지나면 반드시 여름이 온다. 이런 쌀쌀한 봄날씨라도 무더위가 한창일 때가 되면 그리워지는 그런 때가 오겠지.

한적한 곳으로 도립공원 남한산성 산책에 나섰다. 구두신고도 산책길따라 남문으로부터 수어장대를 돌아 행궁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누구든지 걸을 수 있는 널찍한 길이 숲사이로 구불구불 잘 조성되어 있으니 어느 계절에도 간편하게 한바퀴 돌 수 있는 편안한 역사탐방 산책길이다. 아랫동네와는 달리 여기 산골에는 아직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창이다. 일찍 핀 산수유까지도 아직 그대로 피어있다. 바람이 많은 남문(지화문) 부근에서는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셀카폰과 모자가 날아갈 정도이다.

4월 중순 추위가 이 지경인데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까지 눈길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 항복의 예를 올렸던 1637년 2월의 겨울은 얼마나 추웠을까? 상상만 해도 그 원통함에 눈물이 난다. 그런데 어쩌랴, 준비되지 않은 국가안보는 한꺼번에 나라와 백성들을 청나라의 신하국으로, 하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병자호란. 20여만의 여인들이 하녀로 끌려갔고 이후 일부 돌아와서도 '환향녀'로 이혼을 당했다. 임신한 아이는 '호로자식'이라 불렀던 그런 여러 외침의 아픈 역사가 비단 병자호란에서만이 아니었다. 국경이 맞닿은 대륙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과 도발이 수천년간 그치지 않았다. 근세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야기된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북진으로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출하여 거의 자유통일을 바라보는 싯점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이후 3년간의 전쟁기간 중에 수십만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통일의 기회가 무산되어버린 역사가 있다. 지금도 중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지원하여 대남 직, 간접 도발을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예전의 공자, 맹자, 장자 등의 도인들 시대는 어디로 가고 '동북공정'을 시작으로 역사편입을 어물쩡 하더니 이제는 거의 노골적인 '차이나게이트'로 주변국 공산화를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한폐렴'인 코로나사태로 인해 중국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 않겠나 하고 여러 국제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 '天地不仁'이라 했듯이 하늘이 어느쪽 편을 드는 일은 없지만 세상일은 반드시 순리에 따라 일어나는 법이다. 어느쪽이 하늘 뜻에 더 순응하는 편인가에 따라 興亡이 좌우된다 할 것이다. 그러니 나라의 지도자는 물론이고 백성들의 공손한 모습, 'stay humble'은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덕목이다. 거기에다 '깨달음(awakedness)'이 더해진다면 더없이 훌륭한 선진국민이 될 것이고 인류의 공생공영에 기여하는 한민족은 사명을 실천하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제적위상 변화와 그에 따른 북한에 대한 영향, 나아가 국내 종북주사파에 대한 영향요소들까지 코로나이후의 변화상을 잘 지켜보면서 우리의 내실을 잘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수차례 남한산성을 답사할 때마다 역사의 여러 교훈들을 되새기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

여기는 아직 벚꽃이 피어있네.

개나리도 피어있고

남문터널 남쪽은 성남시, 성내는 광주시

비석숲 입구

 남한산성 축조와 왕의 피난 및 행차 등에 관련된 많은 분들의 역할과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세운 공덕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여기저기 있던 비석들을 한지역으로 모아 두었다. 비석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역사들이 숨어 있을까? 다 지나고 보니 덜렁 돌 한덩어리에 불과하구나.

남문(지화문)의 안쪽

남문(지화문)의 바깥쪽

남문에서 서쪽편 수어장대까지 산책로가 잘 연결되어 있다. 1.6km 정도.

서쪽편에서 가장 높은 500여m 고지에 지휘소였던 수어장대가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말자는 무망루 현액

1953년 9월의 이승만대통령 기념식수

남한산성 축조시에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원혼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 그런 억울함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런 영혼까지도 다 생멸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 있다 하겠지만 '본자리'에서 본다면 나지도 죽지도 않는 언제나 如如한 자리이니 이 도리를 깨우치는게 바로 영가를 천도하는 길이 되지 않겠나 싶다.

비밀통로로 사용된 암문이 여러곳 있다.

복숭아꽃

내려오는 길

 저 멀리 성내의 왕궁인 行宮이 보인다.

꽃잎이 눈처럼 떨어져 있다.

이 지역 집들은 다 기와집 한옥형식으로 건축허가가 된다. 보기에는 좋지만 관리유지가 쉽지 않다.

만해 한용운선생의 기념관이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가이고 시인이며 출가스님이다.
백담사 입구에 만해마을이 있다.

그분의 詩 중에서 인상에 남는 몇개 구절 (깨달음의 詩)

 Re:"알수없어요" (한용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알 수 없어요-

이처럼 이쁘장한 장승 소공원도 있다.

모두 짝이 있고 雙이다. 이 또한 생명이 계속 이어지는 이치가 된다. 음양의 조화이고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 의존, 작용, 공조하는 가운데 함께 존재한다.

여기 오토바이도 雙으로 서있네.

성내의 왕궁인 行宮.
여기는 종묘, 사직단까지 갖추어져 있다.

먼산의 봄빛과 초가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산수유도 아직 그대로이다.

 4.22 수요일에도 겨울처럼 찬바람이 많이 부는데 봄꽃은 아직 안간힘을 쓰며 그대로 달려 있다.

시간나는 형제간들이 여기저기 함께 가볼 장소를 물색하다가 실내 식물원이나 박물관 등은 갈데가 없어 멀지 않은 곳으로 남한산성으로 나섰다. 상쾌한 경관 자체만 해도 '코로나 방콕'의 답답함을 해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차장 주변의 行宮과 주변 봄꽃을 돌아보고 모란시장에 가서 점심식사

가락시장역에서 본 롯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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